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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4차원이란 무엇일까? 또 4차원 세계가 존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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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 와서 보면 흔하게 4차원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4차원적 정신세계를 가졌다던지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던지. 그렇다면 그렇게 흔히 말하고 있는 사차원이란 무엇일까?




 차원이란? 사차원은 뭘까?

 차원이라는 개념은 과학, 특히 수학에서 부터 나온 개념이다. 수를 공간적으로 다룸으로써 추론하게된 것인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함수의 그래프가 바로 차원, 그중에서도 2차원의 적절한 예다.

 그렇다면 2차원이란 무엇인가? 수학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2개의 축을 가지는 공간이다. 다시말해 넓이는 있지만 부피가 없는 종이가 2차원의 예다. 종이라도 정밀히 재어 보면 미세한 두께를 가지겠지만 2차원 공간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시말해 2차원 세계라고 하면 바로 종이 위의 세계다. 그리고 1차원은 넓이 조차도 없는 선의 세계다.

 그리고 더 나아가 0차원은,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점과 같은 세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3차원은 2차원에서 축 하나가 더해져 부피를 가지게 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뜻한다.



 우리는 3차원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4차원 시공간이다.
 3차원적인 공간과 1차원적인 시간이 맞물려 있는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1차원적 시간은 뭘까?

 시간은 흐름이다. 3차원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흐름에 따라 그 공간안의 무언가들이 계속 위치를 바꿔가며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것. 이 시간이라는 흐름엔 앞과 뒤밖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1차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3차원 공간은 말했듯이 3개의 축을 가진 공간이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2차원 공간이 무한정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된다.

 이 말은 점이 일렬로 모여 선이되고, 선이 새로운 축을 따라 이어저 면인, 2차원 공간이 되듯이 2차원 공간이 새로운 축에 따라 늘어져 3차원 공간을 이루고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3차원 공간에 새로운 좌표 축이 더해진 4차원 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존재할까?

 좌표 축에 대한 참고 (네이버 오늘의 과학 : 4차원 세계의 모습)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4차원


 일단 4차원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모습을 상상해보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자 이번엔 2차원 세계에 사는 어떤 생물을 가정하고 그 생물이 2차원 세계에서 3차원 세계가 존재하는가에 대해 상상한다고 해보자. 일단 그 생물체는 부피를 가지지 않는 2차원적 생물일 것이다. 마치 움직이는 낙서같은 것이다.

 시간이 있고, 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는 끝없이 거대한 2차원 세상의 한 구석에서 살고있다.

 일단 여기서는 그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자, 과연 그는 어떤 시각으로 2차원 세상을 바라볼까?


 3차원 세계로 돌아오자.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2차원적인 시각을 눈으로 인지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요즘 나오고 있는 3D게임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니터라는 2차원적 표현기구로 우리는 충분히 3차원적인 공간을 표현해 낸다.

 하지만 이때 2차원적 시야와 함께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1차원 시간'이다. 우리는 시선을 이곳 저곳 옮기고 움직이고 하면서 3차원 세계를 본다. 즉 우리는 3차원 공간을 2차원 시야 + 1차원 시간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더 간추려 말해보면 우리는 4차원 시공간에 살면서 3차원 시공간적 시야로 세상을 보고있다.


 자 다시 2차원에 살고 있는 생물의 시야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아마도 그는 2차원 시공간적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3차원에서 종이 위를 내려다 볼 수 있지만 종이 자체가 세계인 이 생물체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눈에는 '선'적인 시야, 1차원 시야가 비친다. 그 1차원 시야의 움직임으로 2차원 공간, 또는 3차원 시공간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 1차원 생물을 가정해보면, 점시야를 가진다. 점시야를 움직여 1차원세계, 즉 선의 세계를 본다.
 0차원에 도달하면 관측할 것이 없다. 그러니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3차원에서 4차원 세계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4차원 생물의 시야를 상상해 볼수는 있지 않을까?
 위의 예를 확장해 나아가면 4차원 공간, 즉 5차원 시공간의 생물은 3차원 시야. 즉 공간 시야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뭘까?

 

 다시 1차원으로 돌아가보자. 1차원 생물은 점시야(0차원)를 보는 눈을 가진다.
 그런데 이때 눈이 4개라고 하면 어떻게될까? 그 생물은 4개의 점시야를 가진다. 100개라면 100개의 0차원 시야를 가진다.

 이 생물이 거희 무한개 수준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고 해보자. 0차원이 늘어선 1차원이다. 즉 이 1차원 생물은 드디어 1차원 시야를 가지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2차원 생물도 2차원 시야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3차원에 이르러서는 면시야가 겹겹이 늘어진, 즉 한 사물을 볼때 사물의 앞, 뒤, 옆, 위, 아래 모든 방향에서 보는 시야가 4차원 공간의 생물이 가지게 될 시야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4차원의 생물


 자 여기선 2차원 세계를 하나의 종이로 상상해보자.
 그리고 두개의 따로 떨어져 있는 종이를 떠올린다. 이건 종이지만 동시에 세상이다. 이 종이는 2차원이지만, 3차원으로 가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종이위에는 생명체가 있다.

 두 종이, 혹은 그 이상의 종이를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그리곤 종이 위의 생명체가 뭔가 이변이 생겨 다른 종이로 옮겨간다. 이 생명체는 위나 아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순식간에 세상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4차원은 이렇듯 3차원이 이어진 세계다. 세계가 갑작스레 종이가 포개지듯 4차원이 되고 우리가 다른 3차원으로 옮겨간다면 우리는 이 2차원 생물과 같은 상황이 될것이다. 시각은 물론이고 후각이나 청각까지도 완전히 다른 곳에 온 것으로 인지한다.


 그런데 위의 종이의 예를 볼때, 겹쳐진 종이들에 걸쳐서 존재하는 무언가가 생길수 있다. 가령 종이 사이로 번지는 잉크처럼.

 그렇다면 이 3차원을 잔뜩 이어 붙여놓은 4차원 공간에 걸쳐서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4차원 물체일 것이며 나아가 4차원 생물이 된다.


 그리고 이 생물은 3차원 시야를 가지게됬다. 그렇다면 그때 그 생물에게 우리는 마치 종이 위에 존재하는 그림이나 점같이 비추어 질지도 모른다.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은 이렇게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3차원 공간이 4차원 공간으로 바뀔때면 우리는 우주안의 것은 다른 3차원들에 뒤섞여 엉망징창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섣불리 상상해보건데 이 우주가 팽창을 끝내면 그때 4차원 세계가 4차원 공간에서 빅뱅같은걸 일으켜 새로 태어나는게 아닐까? 그리고 태어나는 4차원 생물들은 도대체 5차원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하고 고민하면서 살지도 모른다.


시간에 대한 짧은 이야기, 그리고 마무리

 위의 내용들을 잠깐 보면 시간이 1차원이라고 표현된걸 알 수 있다.
 그럼 또 생각할 거리가 생기는데, 혹시 2차원 시간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헷갈리는 이야기다.

 시간은 1차원이라고는 하지만 공간적 1차원과 다르게 뒤로 가지는 않는다. 만약 시간이 뒤로 이동한다면 우리는 마치 비디오가 되감기듯 태초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로 퇴화하고 지구에 충돌한 운석이 다시 되돌아가고 공룡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애초에 시간이 앞으로 안가고 위나 아래나 옆이나 뒤로 이동한다는 생각은 4차원 공간을 생각하는 것 보다도 더 상상이 안된다. 시간에 차원이란 말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걸지도 모른다.

 
 차원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운 주제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은 매력적인 소재로 소설에서도 많이 활용되어 왔다. 물론 그곳은 다른 3차원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항상 미지의 세계는 신비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생각함으로써 진화해 간다. 어찌 보면 쓸모 없어 보이는 생각도 또 다른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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